안법열(병숙) 원불교 장계교당 교무
3월이 오면 마음이 먼저 깨어납니다. 학생들에게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새 교복을 입고, 새 교실 문을 열며,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 낯설지만 설레는 그 첫걸음 속에는 저마다의 꿈과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 바람은 차가운데, 어딘가에서 봄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언 땅 아래에서 새싹이 숨을 고르고, 마른 가지 끝에서 연둣빛 기운이 번져 오르는 이 계절은 언제나 '처음'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처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설레고, 다시 희망을 품습니다.
기미년 3월,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선조들의 함성 또한 하나의 '처음'이었습니다.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분들의 만세 소리는 단지 그날의 외침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마음에 심어진 거대한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는 자유로운 하늘 아래에서 봄을 맞이합니다. 꽃이 피기 전,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정신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대종경 요훈품 12장에서 대종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죽은 사람이니…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그 마음이 살아나기 전에는 어찌할 능력이 없나니라. 그러므로, 불보살들은 모든 중생에게 큰 희망을 열어 주실 원력을 세우시고, 세세 생생 끊임 없이 노력하시나니라."
이 말씀은 3월의 햇살처럼 우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마음을 한 번 돌이키면 새 길이 열리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스스로를 일으킬 힘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희망은 선택이 아니라 생명의 숨결입니다. 희망이 있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감사가 있어야 그 시작이 아름다워집니다.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마음에 봄이 오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원망 대신 감사를 택하고, 체념 대신 설레임을 택할 때 우리 안에 작은 만세 운동이 일어납니다. "다시 해보자." "조금 더 걸어가 보자." 그 한 생각이 곧 마음의 독립선언이 됩니다.
감사는 과거를 밝히고, 설레임은 현재를 깨우며, 희망은 미래를 엽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평안은 선조들의 희망 위에 세워진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희망 또한 다음 세대에게 건네줄 유산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3월입니다.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고, 다시 시작하는 달입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새로 피어나는 싹처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희망을 키워가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우리의 미소가, 우리의 격려 한마디가, 그 사람의 마음을 살려내는 봄바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처음'은 늘 설레고, 설레임은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3월, 우리 모두 마음의 봄을 맞이하며 감사와 희망으로 한 걸음 내딛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