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은 비전향 장기수 추모시
비전향 장기수 양희철 시인 … 시집 출판기념 장수 이야기마당 열려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은 비전향 장기수로 37년을 복역한 후 한국에 남아 있는 장기수 관련지역을 찾아다니며 지은 추모시집 출판기념회가 장수읍 행복나눔터에서 진행되어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계남면 장안리 태생의 양희철 선생이 2023년 출간한 시집 '신념의 강자'에 대해 뒤늦은 3년 만에 장수군농민회, 장수YMCA, 장수민중의집(우리동네), 민족문제연구소 김일한 소장과 장수신문의 후원으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장수군민 외에도 장기수로 복역했던 사람, 통일 운동, 농민운동을 했던 여러 명의 내빈의 참석으로 출판기념회 자리를 더욱 꽉 채웠다.
내빈소개와 양희철 선생 관련 영상시청 후, 올해 93세인 양희철 선생은 자신의 신념과 인생 여정을 들려주며, 건강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시집 글귀를 읽어주기도 하고, 참석자와 질문에 답변도 했다.
◆61년, 평양 방문 진행
양희철 선생은 1934년의 장수 계남면 가곡리에서 출생해, 1955년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고, 1958년도에서 60년도까지 군 복무를 했다. 1961년 3월부터 7월까지 평양 방문 견학 진행을 하고, 1962년에 불법 지역 잠입 탈출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가 1999년 3.1절 특사로 석방이 됐다.
양희철 선생이 북한으로 갔었던 이유는 당시 북한은 통일에 대한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했었다.
양희철 선생은 "큰 형님은 와세다 대학 지질학부를 수료하셨고 다음에는 일본인 기사로서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의 상해 야평 제철회사의 기사로 가셨었다. 김구 선생님을 뵙고 대동아전쟁이 한창일 때 후퇴해서 중국으로 갔다. 거기서 일하시다 해방되어 김구 선생과 같이 귀국했다. 이후 한독당을 만들었지만 정치와 이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라며 "오랜만인 1961년 초봄 형이 서울에 나타나 만났다. 나는 휴전선 위가 궁금했었다. 남쪽이 통일 열기가 북쪽에서는 어떻게 일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북한을 다녀온 경험으로 37년 옥살이를 했다.
◆지리산에서 활동하다 죽은 이 추모
양희철 선생의 '신념이 강자'는 지리산에서 활동하다 죽어간 많은 이들을 추모하는 시집이다. 자신이 기억하는 100명이 넘는 그들의 삶의 정점을 적고 추모하며 그들의 정신과 활동을 추모시로 축약해 기록한 책이다.
양희철 선생은 빨치산에 대한 시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양 선생은 "우리의 현재 생활과 상당히 이질감이 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은 오롯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다. 이름 없이 빨치산 생활하는 과정에서 다시 또 이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라며 "여러분이 도와주셨고 이분들을 찾을 때마다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미 제국을 타도하기 위해서 자기의 한목숨 바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 아는 분들이고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자들을 위해 추모하자는 의지로 쓰게 됐다"라고 밝혔다.
◆현대사, 근현대사와 고대사까지 알아야
한 참석자는 "우리나라는 왜 이 모양일까요?"라며 한탄하며 물었다.
양희철 선생은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들어왔던 1866년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모두 미국 샤먼호가 대동강에 들어왔을 때도 모두 농민들이 강화도민들이 합세해 물리쳤고 많이 희생됐다"라며 "1945년 우리나라에 38선을 긋고 민족을 분열시키고 민족상잔의 비극을 시켰던 것도 미국에 의해서이다. 미국에 의해 우리 민족이 그런 수난을 겪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양희철 선생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선생은 "아직도 그런 것들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우리는 우리나라 현대사와 근현대사, 고대사까지 전부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양희철 선생의 출판기념회를 열도록 힘쓴 민족문제연구소 김일한 소장은 "우리가 앞으로 분단의 비극이 없이 땅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그런 일들을 서로 함께하는 바람을 갖자"라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서 40년 역사를 가르쳤던 사람이지만 뒤늦게 내가 반쪽짜리 역사를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우리의 역사를 잘 알았으면 좋겠다.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옳냐 그르냐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해 봐야 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