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들이 찾은 장수군 문화유산
곽장근(국립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장)

사진 중앙이 장계면 오동리 원오동마을 입구 태봉이며, 우측이 태봉 응달들이고, 좌측 상단부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이다.
사진 중앙이 장계면 오동리 원오동마을 입구 태봉이며, 우측이 태봉 응달들이고, 좌측 상단부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이다.

가야사 국정과제가 한창일 때 장수문화원 한병태 원장님이 태봉(胎封) 이야기를 꺼내셨다. 장계면 오동리에 태봉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모두 다섯 차례의 지표조사를 다녀왔다. 앞으로도 몇 번 더 태봉 추가 지표조사를 실시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가야 영역에서 태봉이 그 존재를 처음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장수군 등 전북에서 손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유산이 태봉이다.
우리나라에서 태봉은 크게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왕실에서 나온 태를 묻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 왕실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胎室) 가운데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하면 태실을 봉하는 제도를 이르던 용어다. 다른 하나는 신라 말기 901년 궁예(弓裔)가 송악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가 태봉(泰封)이다. 이 두 가지는 한자가 서로 다르다.

전북에는 두 개소의 유명한 태봉산이 있었다. 1963년 충남으로 시집을 간 충남 금산군 복수면과 대전시 동구 경계에 태봉산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 항아리를 함경도 고향에서 모셔 와 태봉산으로 불린다. 백두대간 서쪽 금강 최상류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반파가야의 금산 봉화로가 시작하는 곳으로, 지금은 만인산으로 부른다.
다른 하나는 완주군 구이면에 소재한 태봉산이다. 조선 예종의 태실(胎室)이 모셨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훼철되었다가, 지금은 전주 경기전으로 옮겨 잘 모셔 놓았다. 본래 태실이 있었던 곳이어서 태봉 보건 진료소, 태봉 마실길, 태봉 교차로, 태봉초등학교, 작은 태봉산, 큰태봉 등의 지명이 태봉의 맥과 정신을 잇고 있다. 전북에서 소문난 음택풍수의 명당이다.
영호남을 이어주던 백두대간 육십령(六十嶺) 남쪽에 구시봉이 있다. 이 산봉우리에서 장계면 삼봉리 방면으로 가장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 끝자락에 태봉이 위치한다. 장계면 오동리 원동마을 입구 산봉우리로, 그 북쪽 들녘이 태봉 응달들이다. 지도에는 태봉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태봉 응달들이라는 지명으로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한원장님은 태봉을 세상에 알린 장수군 최고의 고고학자였다.

지표조사 때 난생처음 본 태봉의 산봉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태봉으로 추정되는 산봉우리 정상부는 인위적으로 평탄하게 잘 다듬고 나서 비교적 높은 단(壇)을 두었고, 그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으로 산줄기와 평행되게 동서로 장축 방향을 두었다. 태봉의 사방은 성벽처럼 흙을 다져서 비교적 넓게 조성되었고, 서쪽에는 제단 시설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축이 노출되어 있다.
현재 태봉 정상부에 한 기의 민묘가 자리하고 있다. 남양 홍씨 문중 묘역으로 안내문에 의하면 100여 년 전에 무덤을 썼다고 한다. 이곳에서 태봉 응달들 건너 북쪽을 바라보면 세 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삼봉리 제사유적이 잘 보인다. 태봉이 남쪽이 아닌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체성이 예사롭지 않다.

태봉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동쪽에 2단과 서쪽에 5단으로 계단식 평탄지가 있다. 모든 평탄지에는 크고 작은 무덤이 그 기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무덤의 기수가 음택 풍수상으로도 태봉이 명당 터였음을 뒷받침한다. 중국인들이 공자 곁에 잠들고 싶어 10만여 기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중국 산동성 곡부 공림(孔林)을 연상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태봉과 관련하여 한반도 독창설 혹은 한반도 기원설이 대세를 이룬다. 삼국시대 충북 진천 김유신 태실(胎室)을 시작으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최전성기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모든 연구가 왕실 중심으로만 이루어져 민가에서 유행한 장태(藏胎) 문화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중국 장강 유역에서 생명 존중의 전통에 바탕을 둔 중국 영향설도 만만치 않다. 그 핵심 내용은, 무덤이 생명의 연장이라면, 장태는 생명의 출발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었다.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된 중국의 장태 문화는, 기원전 2세기 마왕퇴(馬王堆)를 지나 양(梁)나라에 이르는 중국 남방 문화의 영향으로 보았다.
장수군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태봉은 한반도 독창설 혹은 기원설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진(秦)나라 사람들이 노역을 피해 마한으로 망명해 오자, 그들을 장수군 등 전북 동부에 모여 살게 하였다는 중국의 문헌 기록이 다시 또 오버랩(overlap) 된다. 무주군에도 제철유적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설천면 일원에 태봉을 중심으로 신선봉, 거칠봉, 평전 등의 지명이 모여 있다. 또 다른 차이나 타운이 아니었을까?

제보자 - 한병태 장수문화원장

태봉 정상부로 인위적으로 잘 다듬어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태봉 정상부로 인위적으로 잘 다듬어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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