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자유무역이 지배하던 시기, 농업은 시장에 맡겨도 되는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비교우위론에 따라 값싼 농산물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국내 자원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일정부분 이는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세계 교역이 원활히 작동하고,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각국의 수출 통제 강화는 자유무역 체제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 여러 국가들이 비상 식량 비축을 다시 논의하고, 곡물 저장 시설을 재정비하는 모습은 농업이 더 이상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안보 자산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농업의 중요성은 분명해졌습니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지킬 것인가'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농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농업 보조금 확대에 주로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조금 중심의 정책은 농업의 체질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아 왔습니다. 예산이 농민의 혁신과 미래 투자를 뒷받침하기보다, 농업 행정과 관련 단체, 이른바 농업 관료와 이해관계 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쓰인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명히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이제 농업 정책은 보다 분명한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첫째, 농업을 산업으로서 고도화해야 합니다. 스마트팜, 데이터 기반 농업,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혁신을 통해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워야 합니다. 이는 농업을 단순히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하는 작업입니다. 보호무역 시대의 농업 안보는 생산 기반의 경쟁력에서 출발합니다.
둘째, 소농과 고령 농민에 대한 접근은 복지의 관점에서 분리되어야 합니다. 모든 농가에 산업적 기준과 경쟁 논리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규모화와 기술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소농에게는 농촌 공동체 유지와 기본적 삶의 보장을 위한 복지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농업 보호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산의 효율성입니다. 한정된 국가 재정을 관성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예산은 정책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며, 숫자로 표현된 정책입니다. 따라서 농업 예산 역시 산업 고도화와 복지 지원이라는 목적에 맞게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예산이 다시 농업 관료나 특정 카르텔의 이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농업의 미래는 또다시 발목을 잡히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농업에는 새로운 가능성도 보이고 있습니다. K-컬처 확산과 함께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딸기, 샤인머스캣 등 고품질 신선 농산물의 수출 성과는 우리 농업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는 농업이 보호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산업이라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보호무역의 시대, 농업은 다시 국가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예산 확대가 아니라, 농업을 안보·산업·복지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산업은 고도화하고, 소농은 보호하며, 예산은 국민을 위해 효율적으로 쓰일 때, 우리 농업은 위기의 시대를 버티는 최후의 보루이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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