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들이 찾은 장수군 문화유산
곽장근(국립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장)

계남면 침곡리 요전마을 서쪽 불당골 내 절두평전으로 백화산이 안산을 이룬다.
계남면 침곡리 요전마을 서쪽 불당골 내 절두평전으로 백화산이 안산을 이룬다.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에 요전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 역사에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인 요순시대에서 요(堯)자를 따오고, 전(田)은 밭 전자를 쓴다. 지명에서 중국의 향수(鄕愁)가 묻어난다. 우리나라에서 딱 하나뿐인 마을 지명으로, 아직은 그 역사성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옛날에 장수군이 풍요로웠음을 암시한다.

금남호남정맥의 명산 장안산(長安山)에서 서북쪽으로 쭉 뻗은 산줄기가 장수군 계남면과 천천면 행정 경계를 이룬다. 이 산줄기에 터를 잡은 장수 침령산성과 봉화산(烽火山) 사이 동쪽 기슭 하단부에 요전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양택 풍수에서 이상적인 명당이다. 이 마을 서남쪽 요전이골도 거의 붓 모양의 자연 지형을 이룬다.

요사이 요전마을로 세 차례 지표조사를 다녀왔다. 우연히 면담조사 때 절두평전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사는 성철훈 어르신이 마을 뒤쪽 불당골에 절두평전이 있다고 뜻밖의 제보를 해 주었다. 옛적에 어르신들로부터 불당골 가장 위쪽 절두평전에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 젊어서 나무할 때 다닌 옛길 바로 옆에 절두평전이 자리하여 그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희망을 주었다. 어르신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절두평전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본래 생각하였던 것보다 불당골 골짜기는 상당히 깊었고, 옛길은 잘 다듬어져 평범하지 않았다. 당일 불당골을 지나 큰 산을 넘었지만 절두평전을 찾지 못하고 1차 지표조사는 실패로 끝났다.

40년 넘게 고고학을 하면서 많은 면담조사에 참여하였지만 절두평전이라는 지명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며칠 뒤 다른 방향으로 절두평전을 찾는 2차 지표조사에 도전하였다. 불당골 북쪽 산줄기를 따라 산봉우리 정상부까지 올라갔지만 역시 절두평전을 찾지 못하였다. 어르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절두평전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요전마을로 성철훈 어르신을 찾아뵙고 두 번이나 불당골을 다녀왔지만 절두평전을 찾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르신은 주저하지 않고 직접 안내해 주시겠다고 화답하셨다. 어르신을 따라 불당골을 오르다가 거의 정상부에서 절두평전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이 절두평전이라는 어르신 말씀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전삼기(二顚三起)의 순간이었다. 처음 본 난공불락의 요새지이자 천혜의 보금자리를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요전마을 서쪽에 연화부수형으로 생긴 산봉우리 정상부에 절두평전이 위치한다. 사람 인(人)자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산자락 사이에 상당히 넓은 평탄지가 펼쳐졌는데, 지형은 절두(截頭)였고, 모양은 평전(平田)이었다. 지명에서 조상들의 혜안과 풍류가 차고 넘쳤다. 자연이 만든 난공불락의 철옹성 안에 인간들이 힘을 모아 별천지(別天地)를 연출하였다는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3차 지표조사 탐사 대장을 맡은 어르신이 다시 절터 이야기를 꺼냈다. 젊어서 나무를 할 때마다 절두평전에 자주 들렀는데, 당시에는 한 그루의 나무도 없었지만, 지금은 나무가 무성한 숲을 이룬다고 놀라워하였다. 절두평전 중앙에는 우물과 둑에는 기와장이 놓여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하였다. 낙엽이 두껍게 쌓여 우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석축이 군데군데 잘 남아있었다.

일단 절두평전의 용도는 세 가지로 추측된다. 하나는 어르신 말씀대로 절터였을 가능성과 다른 하나는 천혜의 요새지와 관련된 피난지였을 개연성이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사방이 험준한 산줄기로 감싸여 적합성이 미흡하지만, 후자는 그 부근에 고기마을 추정 왕궁터가 자리하여 적절성이 충분하며, 또 다른 하나는 두 가지가 병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산과 암반을 깎아 만든 옛길도 국가 차원의 토목으로, 그 방향도 고기마을 추정 왕궁터로 이어져 피난지에 더 큰 힘을 실어 주었다.

한반도에서 최초로 알려진 마한계 천연의 요새지가 절두평전이다. 마한부터 반파가야의 이른 시기까지 뜻밖의 아주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이동하여 장기전에 대비하던 국가시설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고기마을 추정 왕궁터와 요전마을 절두평전은 한 몸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중국에서 탈출한 망명인들과 그 후예들이 법화산과 백화산 사이 연화부수형 길지에 망명의 향수를 달래기 위한 이상향(理想鄕)을 건설하지 않았을까? 기원전 전북 동부에 건설된 차이나 타운이 아니었을까?
제보자_ 성철훈(010-9403-1376),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요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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