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법열(병숙) 원불교 장계교당 교무
달력 속에서 2월은 유난히 짧다.
눈길을 주기도 전에 끝나 버리는 달,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을 종종 가볍게 흘려보낸다. 새해는 이미 시작되었고, 진짜 삶은 조금 더 여유가 생기는 3월부터라고 스스로를 미루어 두면서 말이다.
그러나 2월은 결코 약한 달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단단한 힘을 지닌 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달의 한가운데에는 설날이 있고, 설은 시간을 다시 세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설날 아침, 집 안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단정히 옷을 입고, 조심스레 어른 앞에 앉는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깊이 숙이는 그 짧은 순간,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낮아진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만, 그 말이 닿기를 바라는 곳은 마음 가장 깊은 자리이다.
세배를 받고 미소 짓는 어른의 얼굴을 바라보다 보면,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느려진 걸음, 굽은 어깨, 그러나 여전히 따뜻한 눈빛...
그 앞에 앉아 있으면, 새해를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막연한 결심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약속처럼 다가온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설날마다 말로 주고받는 '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더 많이 가지는 일일까, 더 편해지는 일일까. 아니면 마음이 욕심에 끌려 다니지 않고, 하루를 제자리에 살아내는 일일까.
허리를 숙였던 그 잠깐의 시간 속에서, 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스친다. 마음을 낮추고 욕심을 내려놓는 바로 그 순간이 이미 충분히 복된 시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러한 마음의 자리를 일찍이 이렇게 일러주셨다.
"여의 보주(如意寶珠)가 따로 없나니,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 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 보주니라."
복은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힘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하고 싶은 것에만 끌려가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의 자유. 그것이야말로 삶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참된 보배일 것이다.
그래서 2월은 가장 짧지만 가장 강한 듯하다.
새해의 다짐이 실제 삶과 마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설을 지나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 일상 속에서 마음은 여전히 흔들린다.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욕심을 하나 내려놓고, 마음을 바로 세울 기회가 찾아온다.
자연도 이 시기 가장 깊은 곳에서 움직인다. 아직 바람은 차고 눈은 남아 있지만, 땅속에서는 봄을 향한 준비가 조용히 진행된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가장 중요한 일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마음 또한 그러하다.
2월은 새 계획을 더 많이 세우는 달이라 아닌 욕심이 앞서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이 일에 끌려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사이에서 스스로를 잃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돌아보며 처음 마음을 다시 살피는 달이겠다.
설날 아침 세배를 올리며 가졌던 그 낮은 마음을, 일상 속에서도 조금만 더 오래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미 여의 보주를 지니고 사는 셈일 것이다.
짧지만 강한 달에, 2월은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